나만 유독 덜렁대는 것 같다는 생각의 시작
최근 들어 자꾸 깜빡거리는 게 심해졌다. 회사에서 중요한 서류를 결재 올리려다 보면 숫자 하나가 틀려 있거나, 메일 수신인을 잘못 적어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아, 오늘 좀 피곤한가 보다’ 하고 넘겼을 일들이 이제는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자리에서 잘만 해내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자꾸 삐끗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답답함이 커졌다. 그냥 단순한 부주의라고 하기엔 빈도가 너무 잦아져서, 결국 인터넷 검색창에 ‘성인종합심리검사’를 입력했다. 예약하기까지도 참 오래 걸렸다. 용기를 내서 강남 근처의 한 상담 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비용이 30만 원에서 40만 원대까지 다양해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만 며칠을 했다.
긴장 속에 시작된 상담과 검사의 시간
막상 방문한 날은 날씨도 유난히 흐렸던 기억이 난다. 센터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차분했다. 들어가자마자 묘하게 긴장이 됐는데, 담당 선생님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상담은 약 50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했다. 2년 전쯤 겪었던 번아웃 증상부터 시작해서, 요즘 들어 불면증 때문에 밤마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다 해가 뜨는 일까지. 선생님은 그저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는데, 지능 검사부터 성격 검사까지 종류가 꽤 많았다.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것조차 집중이 잘 안 돼서 중간에 펜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선생님은 그냥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이셨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견디기 힘들었던 일주일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의 일주일은 정말 길었다. 혹시라도 내가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계속 엄습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우울증이다, 성인 ADHD다 말이 많았는데 사실 그런 딱지가 붙는 게 무서웠던 것 같다. 결국 다시 센터를 찾았을 때 선생님은 그래프가 그려진 결과지를 내밀었다. 생각보다 정량적인 지표들이 가득해서 마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복합적이었다. 우울증 수치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부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부주의라는 게 사실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틈을 타서 들어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럽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비용과 시간 그 이후에 남은 미묘한 마음
상담을 다 마치고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4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썼지만, 솔직히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 마음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다는 걸 확인받았다는 안도감과, 앞으로 이걸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모를 막막함이 반반 섞인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구명조끼 관련 뉴스가 나왔다. ‘작은 부주의가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는 문구가 유독 눈에 띄었다. 나도 내 마음의 구명조끼를 제대로 입지 못해서 자꾸 세상 속에서 떠내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은 끝났지만 숙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매일 밤 일기를 쓰라는데,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선생님이 해준 말들을 노트에 적어놓긴 했지만, 다시 펼쳐보기가 두려워서 책상 구석에 밀어두었다. 내일 출근해서 또 실수를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벌써 머릿속을 맴돈다.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성인종합심리검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도구는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기적적인 변화를 바랐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투정을 늘어놓는 건지 헷갈리지만, 일단은 이렇게라도 쏟아내고 나니 조금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요, 그래프 보고 성적표 받는 기분이었다니 정말 공감되네요. 제가 늘 자꾸 잊는 게 많아서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검사 결과지를 보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검사 결과 때문에 좀 엉망이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경험 한 적 있긴 한데, 스스로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걸 새삼 느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