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문을 열기까지가 정말 길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냥 단순히 조금 뒤척이는 정도가 아니라, 새벽 3시가 넘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심장이 쿵쿵거리는 날들이 계속됐다. 처음엔 커피를 줄이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카페인을 끊어도 소용이 없더라. 지인들은 그냥 운동을 안 해서 그렇다거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며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느껴지는 그 기분 나쁜 공허함은 운동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간판을 몇 번이나 서성이다가 억지로 발을 들였다. 상담 비용은 보통 3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였는데, 처음엔 보험 처리 문제나 기록이 남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그런 고민보다는 그냥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진료실 안에서의 짧은 대화
병원 안은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다들 자기 핸드폰만 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대기 시간은 길어야 20분 정도였지만,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은 무척 사무적이었다. 내가 요즘 잠을 못 자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고 했더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신체화 증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조하게 하셨다. 정신분석상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긴 대화를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었을까. 선생님은 일단 수면제와 가벼운 항불안제를 처방해 주겠다며, 일주일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약국에서 받아온 약 봉투를 들고 나오는데, 뭔가 해결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이 남았다.
약을 먹어도 풀리지 않는 것들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확실히 밤에 기절하듯 잠들긴 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멍한 느낌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몸은 쉬었는데 마음은 그대로인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증상도 여전했다. 어쩌면 이게 그냥 내 성격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약 용량이 맞지 않는 건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진료실에선 항상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 질문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2주 정도 지나니 약 먹는 시간 챙기는 것도 일상이 되어버렸는데, 가끔 내가 왜 이걸 먹고 있는지 멍하니 생각하게 된다. 사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털어놓고 싶어서 간 거였는데, 병원은 그냥 화학적인 해결책만 제시해 주는 것 같아 조금 쓸쓸했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하나 싶어
요즘은 마포구보건소 같은 곳에서 하는 우울증 검사나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은 대형 병원이 아니라 동네 의원이라 그런지 체계적인 상담보다는 짧은 진료 위주로 돌아가는 게 사실이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심리상담 센터를 따로 알아봐야 하나 고민 중이다. 하지만 막상 또 새로운 곳을 찾아가서 처음부터 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니 지레 겁부터 난다. 그냥 여기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서 버티는 게 최선인 걸까. 요즘은 불면증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내 인생이 나아지거나,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니까.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는 밤
어젯밤에도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깼다. 창밖을 보는데 문득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다고 해서 당장 우울증이 낫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담 기록이 남아서 취업이나 보험에 지장이 있을까 봐 걱정했던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지금은 당장 내일 아침을 어떻게 견딜지가 더 중요하니까. 조현병이나 심각한 장애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일상에서 작게 무너지는 사람들도 참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불안함 자체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느끼는 이 묘한 기분은 대체 언제쯤 사라질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