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 걸린 시간
불면증이 단순히 며칠 잠을 못 자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그냥 침대 옆에 스마트폰을 두고 유튜브 영상을 멍하니 보는 것으로 해결해보려고 했다.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4시를 넘겨 창밖이 조금씩 푸르스름해질 때까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면 그때부터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왜 나만 이렇게 잠을 못 잘까, 내일은 어떻게 버티나 하는 걱정들. 사실 병원 예약 버튼을 누르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 정도면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닐까’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결국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게 느껴지니 어쩔 수 없었다. 천안이나 수원 쪽 신경정신과를 검색해 봐도 어디가 나랑 맞을지 알 수 없으니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을 골랐다. 사실 상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 것 같아서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초진 비용이랑 상담료를 합치면 거의 5만 원에서 10만 원 가까이 깨지는 건 예사니까.
대기실의 정적과 묘한 공기
병원에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가 있다. 소독약 냄새인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신과 대기실은 일반 내과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다들 각자의 사연을 숨긴 채 얌전히 앉아 있다. 내 순서를 기다리면서 괜히 폰을 만지작거렸다. 진료 시간이 다가오니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고민으로 이곳에 왔을까’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정신요양시설이나 강제입원 같은 무거운 단어들을 떠올리며 겁을 먹기도 하겠지만, 사실 대부분은 그저 매일 반복되는 우울감이나 불면증 같은 일상적인 고통을 조금 덜어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기다리는 30분 동안 나는 수십 번도 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진료실 안에서의 짧은 문답
막상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선생님 앞에 앉으면 생각했던 말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잠을 통 못 자요’, ‘회사에서 자꾸 무기력해져요’라는 간단한 말들. 선생님은 차분하게 몇 가지를 물어보신다. 예전에는 우울증의 원인이 뭔지,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스스로 캐묻곤 했다. 하지만 전문가 앞에서 털어놓는 대화는 생각보다 건조하다. ‘수면 위생을 지키세요’, ‘운동을 좀 하세요’ 같은 뻔한 조언들을 들을 때면 조금 허탈하기도 하다. 사실 나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 증상을 공인받는 것만으로도 아주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상담이 끝날 때마다 느껴지는 건, 이게 정말 치료가 되고 있는 걸까 하는 막연한 의문이다. 약을 처방받아 약국으로 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무겁다.
약봉지를 보며 느끼는 묘한 거리감
처방받은 약을 집에 가져와서 식탁 위에 올려두면, 이걸 정말 매일 먹어야 하나 싶다. 한 알, 두 알 늘어나는 약봉지를 보면 내가 정말 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잠들고 싶었는데, 이제는 약의 힘을 빌려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사실이 때때로 서글프다. 물론 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그 과정에 얽힌 복잡한 감정들은 잘 정리가 안 된다. 어떤 날은 약을 먹고 나면 몸이 축 처져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더 힘들기도 하다. 이럴 때는 이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견뎌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결국 불면증 극복이라는 게 약 한 알로 해결될 일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끝내 풀리지 않은 의문들
상담을 몇 번 다녀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상담 치료가 나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아니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인지. 생성형 AI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요즘 사람들이 이해 가기도 한다. 누군가 내 말에 무조건 동조해주면 마음이 편하긴 하니까. 하지만 진짜 전문가와의 상담은 가끔 불편하다. 나를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뒤로 내 상태가 극적으로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냥 오늘 하루를 조금 덜 힘들게 보내는 법을 연습 중이라고 해야 할까. 병원 문을 나서며 느끼는 이 애매한 기분은 아마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다음에 가면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똑같은 말만 반복하다 올지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