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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버튼을 누르기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도저히 몸이 침대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냥 피곤한 게 아니라, 머릿속이 꽉 막힌 모래 주머니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며칠째 이어지던 때였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월급 받으면서 꾹 참고 버티는 게 어른의 삶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왔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게 잘 안 됐다. 사실 진작부터 상담을 받아볼까 고민은 했다. 신논현역 근처에 정신건강의학과가 정말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간판들을 보고 있으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이상한 상태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가서 더 유난을 떠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병원 문턱 넘기

결국 평소에 지나다니던 강남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상담 예약을 잡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건조했다. 상담 비용은 회당 7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였는데, 이 비용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예약할 때 데스크 직원이 이것저것 묻는데, 목소리가 너무 무미건조해서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했다. 이곳은 오후 7시까지 진료를 해서 퇴근하고 가기에 딱이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대기실에 사람이 꽤 많아서 놀랐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묘하게 안심이 됐다. 대기 시간은 예약 시간보다 15분 정도 더 길어졌다.

무언가 말하기 시작하니 봇물 터지듯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무척 사무적인 태도였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요즘 날씨가 어떻다거나, 회사 근처 점심값이 너무 올랐다는 식의 뻔한 이야기들. 그런데 선생님이 툭 던진 한마디가 상황을 바꿨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울컥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 질문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울컥했던 순간은 매일이었는데, 하나를 딱 꼽으려니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됐다. 결국 회사에서 겪었던 자잘한 인간관계 문제부터 시작해서,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30분 동안 쏟아냈다. 말하고 나니 뭔가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었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며칠 뒤 찾아온 묘한 공허함

상담을 마치고 신논현역으로 걸어 나오는데, 세상이 평소와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담 전에는 모든 문제가 당장 해결될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상담실 문을 나서니 다시 일상 속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허망했다. 약을 처방받지는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해야 한다는 게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상담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가도, 또 어떤 날은 ‘내가 왜 이 돈을 내고 여기서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일단 예약을 한 번 해보고 나니, 다음번 예약까지 가는 길은 이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건 사실이다.

해결되지 않은 숙제들

여전히 내 고민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폭식증처럼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도 그대로고, 밤에 잠들기 전에 불안해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습관도 여전하다. 선생님은 상담을 통해 점차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마음이 어디 기계처럼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가끔은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가도, 또 상담실 예약 날짜를 확인하게 된다. 요즘은 강남역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예전처럼 단순히 ‘복잡한 곳’이라고 느끼기보다는, 나만의 작은 숨구멍이 숨겨진 장소처럼 느껴진다. 이 불확실한 기분을 안고 이번 주에도 상담실 문을 열게 될 것 같다. 다음번에는 지난번에 못한 이야기를 다 꺼낼 수 있을까, 그건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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