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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병원 대기실에서 보낸 두 시간

어쩌다 보니 정신과 문을 열었다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아침, 알람 소리가 평소보다 유독 거슬리고 화가 나서 잠을 깨는 것 자체가 버거워졌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사실은 몇 달 전부터 계속되던 무기력함이 임계점에 다다른 것뿐일지도 모른다. 회사 근처에 있는 내과에서는 가끔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약을 타곤 했는데, 이번에는 의사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오히려 사람을 더 웅크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검색창에 ‘동네 정신과’를 쳤다. 평점이 높고 낮은 건 상관없었다. 그냥 가장 빨리 예약이 가능한 곳으로 골랐다. 3만 원 남짓한 초진 상담비가 든다는 글을 봤는데, 막상 가보니 건강보험 적용이 되어 생각보다 금액은 덜 나왔다. 하지만 돈보다 더 큰 건 대기실의 공기였다.

대기실의 무거운 공기

강남 한복판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은 생각보다 붐볐다. 나처럼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다들 핸드폰만 보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 약 40분 정도 기다렸는데, 그 시간이 4시간처럼 느껴졌다. 벽에 붙은 ‘우울증 선별검사’ 안내문이 자꾸 눈에 밟혔다. ‘최근 2주간 일상에 흥미가 없었습니까?’ 같은 질문들. 당연히 그렇다고 체크할 수밖에 없는데, 이걸 누군가 볼까 봐 괜히 종이를 접어 가방 깊숙이 넣었다. 사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나 혼자 세상의 모든 시선을 감당하는 기분이었다.

상담실 안에서의 짧은 대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사가 차트를 보며 앉아 있었다. 인천교통공사에서 주최하는 케어데이 행사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병원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여기는 좀 더 차갑고 건조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거창한 고민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생각을 짜내다가, 그냥 “잠을 잘 못 자고, 아침이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해버렸다. 의사는 내 대답을 메모장에 적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해 준다고 했다. 조울증 완치라거나 그런 거창한 목표는 사실 없었다. 그냥 어제보다 조금만 덜 피곤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오는 마음은 왜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약을 먹기 시작한 첫 주

약국에서 약을 타면서 약사에게 주의사항을 들었다. ‘졸음이 올 수 있고, 초기에는 속이 메스꺼울 수 있습니다’라는 뻔한 소리들. 며칠 먹어보니 확실히 멍한 기분이 들긴 했다. 불안장애 약이 같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가슴이 뛰는 건 좀 줄어든 것 같은데, 대신 낮에 자꾸 하품이 쏟아졌다. 직장에서 일하는 도중에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훌쩍 가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전에 상담 커뮤니티에서 본 글 중에는 ‘약을 먹고 나면 차라리 괜찮다’는 말도 있었는데, 내 경우는 좀 미묘하다.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조금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일상을 유지하는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 다음 진료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상태가 나아졌다고 하면 약을 줄여줄까, 아니면 그냥 유지할까? 사실 상담이라는 게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게 내 마음을 치유해 주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약으로 증상을 조금 억누르는 과정일 뿐. 주변 친구들에게는 그냥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 다닌다고 둘러댔다. 굳이 우울증이라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직은 더 크다. 다음 주 병원 대기실에서는 이번처럼 덜 웅크리고 있을 수 있을까. 그냥 멍하니 대기실 의자에 앉아 다음 환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을 버티는 것 자체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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