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에 자꾸 눈이 떠졌다. 보통은 3시나 4시쯤이다. 처음엔 그냥 요즘 스트레스를 좀 받아서 그런가 보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일주일이 되고 이주일이 넘어가니까 상황이 좀 묘해지더라. 낮에는 멍하니 있다가 퇴근길 지하철에 앉으면 세상이 참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유튜브라도 하나 더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은 그냥 침대에 눕는 게 전부다. 이게 다들 말하는 우울증 초기 증상인가 싶기도 한데, 막상 병원 이름을 검색창에 쳐보면 망설여지는 마음이 더 컸다.
미아동 근처에서 병원을 고르던 날
미아 쪽에 있는 정신과를 몇 군데 찾아봤다. 후기를 읽어봐도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친절하다’거나 ‘대기가 길다’ 같은 평범한 말들. 사실 나는 대기가 긴 게 제일 무서웠다. 만약 대기실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 친구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기억나서다. 너무 멀리 가면 가기 싫어서 금방 그만두게 된다고. 결국 예약도 없이 무작정 걸어서 병원 입구까지 갔다가, 문고리를 잡고 5분 정도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난이다 싶지만, 그때는 그 문을 여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대기실에서의 어색한 침묵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평범했다. 밝은 조명에 커피 머신이 하나 놓여 있고, 한쪽 벽에는 마음 건강과 관련된 팸플릿이 꽂혀 있었다. 접수를 하는데 간호사분이 너무 사무적으로 대하셔서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다. 진료비는 초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얼마 안 나왔다. 대략 2만 원에서 3만 원 사이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그냥 카드를 긁고 앉아 있는데,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처럼 힘든가 싶어 괜히 한 명씩 훑어보게 되더라. 다들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지만, 그 공간의 공기는 확실히 밖과는 달랐다. 무거우면서도 묘하게 차분한, 그런 느낌이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생긴 작은 변화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별다른 말씀 없이 약을 처방해주셨다. 수면제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기분 안정제 종류라고 했다. 처음 며칠은 약을 먹고 나면 머리가 좀 멍하고 입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부작용인지, 아니면 내 뇌가 적응하는 과정인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했다. 어떤 날은 약을 먹고 나니 오히려 더 잠이 안 오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도 했다. 조울증이나 우울증 카페 같은 곳을 들어가 보면 다들 약 먹고 불면이 왔다는 글이 하나씩은 꼭 있더라. 다들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싶어 안도하면서도, 이게 해결책인지 아닌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 건 매한가지다.
치료라는 게 참 모호한 영역이다
벌써 한 달째 약을 먹고 있다. 새벽에 깨는 횟수는 확실히 줄었다. 예전에는 3시에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는데, 이제는 눈을 떴다가도 금방 다시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완전히 개운해졌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전보다 덜 피곤하고, 조금 더 일상을 견딜 힘이 생긴 정도랄까. 은평구 쪽으로 이사를 고민하면서 병원을 옮겨야 하나 싶기도 한데, 또 새로운 곳을 찾아가서 처음부터 내 이야기를 늘어놓을 생각을 하면 벌써 기운이 빠진다. 상담소나 정신과라는 곳이 마법처럼 한 번에 나를 고쳐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이렇게 소소하게 나아지는 것과 안 나아지는 것 사이를 오가다 보니 가끔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결국은 그냥 이렇게 지내는 중
수영 쪽에 사는 지인이 자기도 한때 힘들었는데 보약 먹고 나아졌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냥 병원에서 준 약을 먹고 있는데, 약값이 매달 나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약을 끊었을 때 다시 예전처럼 새벽에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만 보게 될까 봐 그게 무서워서 계속 처방받는다. 완치라는 게 있을까. 아니면 그냥 평생 이렇게 덜 힘든 상태를 유지하면서 사는 게 최선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내일도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만이 내 일상의 아주 작은 고정점이 되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