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서로 상처만 더 헤집고 온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던 그날의 상담

서로 말문이 막히기 시작할 때쯤 찾아본 무실동 골목길

와이프랑 사소한 집안일 문제로 말다툼이 시작되었는데,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결국 일주일 가까이 집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그 특유의 무겁고 차가운 공기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밥도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거실에서 마주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생활이 지속되자, 이러다가는 진짜 파국으로 치닫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동네에서 해결해보려고 인터넷에 원주부부상담을 몇 번이고 검색해 보았지만, 대부분이 뻔한 광고 글이거나 홍보성 블로그뿐이라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원주 무실동 시청 뒷골목 쪽에 위치한 한 심리상담센터의 글을 보게 되었다. 번화가 한복판에 있어서 접근성은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상담 일정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직장인이라 평일 저녁이나 주말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이미 그런 황금 시간대는 보름 가까이 예약이 밀려 있다고 했다. 어찌어찌 사정을 해서 열흘 뒤 평일 마지막 타임인 저녁 7시 반으로 예약을 겨우 잡았다. 상담 당일 퇴근하고 부랴부랴 차를 몰고 무실동으로 향했는데, 그 좁고 복잡한 골목길은 여전히 주차가 지옥이었다. 주차타워는 이미 만차였고 주변 유료 주차장마저 빈자리가 없어 골목을 서너 바퀴 돌며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상담 시간보다 10분이나 늦게 도착했고, 차에서 내릴 때부터 와이프와 나 둘 다 잔뜩 예민해진 상태였다.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 사이에서 고민했던 며칠간

처음에는 심리상담센터 말고 그냥 일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볼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었다. 아내가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구석으로 피하는 모습이 마치 대인기피증증상 같기도 했고, 나 역시 매일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우울증 진단이라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근처 소아정신과나 성인 정신과를 찾아보며 차라리 약을 처방받아 먹는 게 서로에게 덜 상처를 주는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요즘 마음공부니 명상원이니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프로그램들도 유행이라는데, 그런 곳에 가서 수련을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정신적 질환이라기보다는 둘 사이의 대화 방식과 꼬여버린 관계의 실타래였다. 정신과는 주로 증상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해주는 곳이라 우리가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비용이 조금 더 들고 귀찮더라도 직접 대화를 중재해 줄 카운슬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약 당일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이런 곳까지 와야 하나’ 하는 자괴감과 묘한 거부감이 교차했다.

비좁은 대기실과 생각보다 비싸게 느껴졌던 상담 비용

센터 내부는 따뜻한 조명과 차분한 음악으로 꾸며져 있었지만, 우리 부부의 굳은 표정 때문인지 공기는 여전히 어색했다. 데스크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는데, 묘하게 거리를 두고 앉게 되더라. 상담 전에 작성하라고 준 초기 질문지에는 결혼 만족도, 갈등의 주된 원인, 서로에게 바라는 점 등을 체크하고 적는 문항들이 가득했다. 볼펜을 쥐고 항목들을 채워 나가는데, 옆에서 와이프가 한숨을 쉬며 적어 내려가는 소리가 신경 쓰여 도무지 내 질문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슬쩍 훔쳐보려다가 더 어색해질 것 같아 그냥 앞만 보고 서둘러 칸을 채웠다. 이곳의 상담 비용은 1회기 50분 기준으로 13만 원 선이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일반 병원 진료와 달리 비급여 영역이라 그런지 가격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달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갔다. 서민 부부에게 50분에 13만 원이라는 지출은 결코 가볍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오늘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시작해서 어색하게 침묵만 지키다 끝난 50분

이름이 호명되고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인상 좋은 상담사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질문지를 토대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상담사가 최근 가장 크게 갈등을 겪은 사건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지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며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일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말투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데, 솔직히 억울하고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중간에 말을 자르고 내 입장을 반박했다. 그러자 상담사가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지금은 남편분이 아내분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입니다”라며 제지했다. 내 감정은 억누르고 아내의 원망 섞인 말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50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짧았다.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기만 했을 뿐, 정작 갈등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대화는 시작도 못 한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50분을 가리키자 상담사는 오늘의 시간은 여기까지라며 다음 회기 예약을 권유했다. 우리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갔다 와서 더 복잡해진 마음에 대해

상담소를 나와 다시 주차해 둔 차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차 안은 올 때보다 훨씬 더 무겁고 싸늘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억지로 서로의 상처와 바닥을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더 나빠진 것 같은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아내는 여전히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나 또한 기어를 넣고 운전대를 잡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차라리 상담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날것의 감정이 드러나지는 않았을 텐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 쓴 13만 원의 돈도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다음 주 예약은 어떻게 취소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핑계를 찾기 바빴다. 집에 도착해서도 우리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부부 상담을 받으면 뭔가 명쾌한 대화의 기술을 배우거나 갈등이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더 복잡하고 꼬여버린 실타래를 안고 돌아온 기분이다.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시 그 비싼 상담실을 찾아가 억지로라도 마음을 터놓아야 하는지, 여전히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캄캄한 방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서로 상처만 더 헤집고 온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던 그날의 상담”에 대한 3개의 생각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