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센터 문턱 넘기가 제일 힘들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회사 일이 바빠서 그런가 싶었는데, 이게 한두 달이 넘어가니까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져서 멍하니 천장만 보는 시간이 너무 괴롭더라. 다들 머리 아플 때 병원 가라고 하는데, 정신과나 심리 상담 센터는 왠지 모르게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 들어서 계속 미뤘다. 그러다 결국 검색창에 ‘서울 정신병원’, ‘심리상담치료’ 같은 단어들을 아무 목적 없이 쳐보다가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을 하나 골랐다.
1회 10만 원이 주는 기묘한 압박감
내가 간 곳은 1회 상담에 대략 10만 원 정도 하는 곳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라 그런지 상담실에 앉아 있는 동안 ‘이 돈만큼의 가치를 뽑아내야 한다’는 묘한 강박이 생기더라.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나는 내 상황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사실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매일 조금씩 말라가는 기분인데 이걸 말로 설명하려니 조각난 문장들만 튀어나왔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여주실 때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하는 엉뚱한 경계심이 들었다. 상담 시간은 50분인데, 막상 끝날 때쯤 되니 하고 싶었던 말의 반도 못 한 것 같아 찜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묘한 공허함
상담이 끝나고 나오는데 오히려 머리가 더 무거워졌다. 도심의 소음이 갑자기 너무 크게 들리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관찰됐다. 분명히 ‘나를 돌보러’ 간 건데 왜 이렇게 진이 빠지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보니 교정시설이나 마약 치료 같은 무거운 주제로도 상담 지원이 늘고 있다던데, 나처럼 일상에서 그냥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는 비용도 생각해보면 꽤나 개인적인 숙제인 것 같다. 산후우울증이나 갱년기 치료 지원처럼 국가에서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지만, 막상 내가 직접 알아보고 찾아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지극히 개인적인 노동이더라.
약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들
처방받은 약을 들고 약국에 들렀다. 약봉지를 보는데 이걸 정말 먹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조금 더 버텨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뇌가 쉴 틈이 없어서 언어 기능이나 일상적인 감각이 무뎌질 수 있다고 했다. 뇌전증 환자들이 겪는 언어 퇴행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언급하신 건 아니지만, 심리적인 상태가 신체에 주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말이 자꾸 맴돌았다. 약을 먹고 나면 정말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을까? 반대로 약에 의존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여전히 머릿속을 뱅뱅 돈다.
어쩌면 해결보다는 그냥 털어놓는 과정
상담실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솔직히 말하면 드라마처럼 한 번의 상담으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진짜 상태가 안 좋긴 하구나’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 같아서 조금 울적하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씩 문득 드는 그 불안감이 상담을 받기 전보다는 아주 조금은 덜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다음 예약 날짜가 다가오는데, 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해결책을 찾으러 간 건데, 가서 더 많은 의문만 들고 오는 것 같아 어떨 때는 그냥 안 가는 게 나은가 싶다가도, 예약하지 않으면 또 밤을 지새울까 봐 다시 결제창을 누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