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은 이미 몇 달 뒤로 예약이 밀려있었다
한동안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낮에는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에는 그냥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가, 아니면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이게 몇 달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래서 큰맘 먹고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에 전화를 해봤다. 세상에, 대기 명단이 꽉 찼단다.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게 두 달 뒤라고 했다. 지금 당장 머릿속이 시끄러운데 두 달을 기다리라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강북구 쪽 센터에서 타로카드로 마음 검진을 한다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타로를 보러 갈 힘도 없어서 그냥 노트북을 켰다. 동네는 포기하고 조금 범위를 넓혀보기로 했다.
삼성동까지 가는 길이 꽤나 멀게 느껴졌다
결국 삼성동에 있는 병원 하나를 찾아내서 어렵게 예약을 잡았다. 신촌 쪽도 알아봤는데 거기는 이미 마감이었다. 병원 위치가 역에서 꽤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 사람들이 다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게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나만 세상에서 분리된 느낌이랄까. 병원 건물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들어서 손바닥에 땀이 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접수를 하는데, 데스크 선생님이 건네주는 문진표를 받아 들고 펜을 잡는 것 자체가 참 무거웠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자꾸 핸드폰으로 주식 차트를 확인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랑은 상관없는 세상의 일들처럼 보였다.
진료비와 상담 시간 그리고 남는 물음표
처음 방문했을 때 초진 비용으로 5만 원 정도를 냈던 것 같다. 검사 항목에 따라 가격은 좀 달라진다고 했다. 15분 정도 짧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과 ‘약부터 좀 먹어보죠’라는 말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서 2만 원 정도를 추가로 냈다. 집에 돌아와서 처방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이게 정말 내 마음을 고쳐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뉴스를 보니 요즘 청소년들도 정신질환으로 입원하는 경우가 1000명이 넘는다는데, 나만 유난 떠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묘한 피로감
약봉지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일인데, 약까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환자처럼 만드는 것 같았다. 사실 병원을 다녀오면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피곤했다. 사람들은 자연을 걷거나 새소리를 들으면 우울감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걷는 것조차 거대한 미션처럼 느껴진다. 보문산 개발이나 공원 산책 같은 이야기는 건강한 사람들의 언어처럼 들린다. 당장 오늘 밤을 어떻게 넘길지가 더 큰 문제인데 말이다. 지역 센터에서 미술 전시회를 열거나 상담을 권유하는 홍보물들을 봐도, 일단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약을 먹기 시작한 뒤에도 여전한 불안
벌써 일주일째 약을 챙겨 먹고 있다. 드라마틱하게 무언가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불면증은 있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고통스럽다. 다만, 병원을 한 번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은 덜 다그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 그래도 병원까지 갔다 왔잖아, 그러면 된 거 아냐?’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지만, 사실 이게 맞는 방향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상담 선생님이 다음번에는 자해 충동이나 구체적인 감정 변화를 기록해 오라고 했는데, 사실 그것들을 적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잔인한 일이다. 무언가 더 해결된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저 며칠이 지나갔다는 사실만이 나에게 남아있다.

주식 차트 보시는 분처럼, 예상치 못한 방문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셨겠네요. 시간 될 때마다 병원 예약은 미리미리 하는 게 좋더라고요.
주식 차트를 확인하는 모습이 정말 현실 같았어요. 저도 가끔 그런 순간이 있을 때가 있더라구요.
주식 차트 보면서 주식 이야기 하는 모습이 정말 딱딱하더라구요. 저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왠지 더 불안해지는 기분이에요.
처방전 들여다보면서 진짜 답답한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네요. 제가 늘 이런 상황에 갇히는 느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