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요즘 회사에서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분명히 기획안을 작성해야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어제저녁에 먹다 남은 배달 음식을 냉장고에 그대로 뒀는지 아닌지 같은 사소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옆자리 동료가 타이핑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갑자기 창밖으로 지나가는 구름 모양이 신기해서 한참을 보고 있기도 한다. 겉으로는 조용히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 뇌는 아무것도 처리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상태다. 처음에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다. 야근이 잦았으니까, 수면 패턴이 망가져서 뇌가 지친 거겠지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얌전한 성격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나
어릴 적부터 나는 소위 말하는 ‘얌전한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선생님께 대드는 일은 없었다. 다만 수업 중에 선생님 설명을 듣다가 창밖의 새를 보느라 정신이 팔리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이게 성격 문제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조용한 ADHD’라는 단어를 봤을 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밀려왔다. 보통 ADHD라고 하면 산만하고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겉으로 티가 안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과잉 행동은 없지만 주의 집중력만 낮아서 일상적인 업무를 할 때 실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다. 나도 모르게 웩슬러 지능검사 같은 걸 검색해보고 있었다. 단순히 집중을 못 하는 것과 뇌의 회로 문제라는 건 어떻게 다른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담 비용과 예약의 높은 문턱
결국 병원 예약을 시도해봤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를 몇 군데 찾아봤는데, 초진은 대기를 한 달 가까이 해야 한다고 했다. 상담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단순 상담만 받아도 5만 원에서 10만 원은 훌쩍 넘고, 검사까지 진행하면 몇십만 원은 기본으로 깨진다는 이야기에 지갑을 먼저 열어보게 됐다. 대기실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피로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정말 병원까지 가야 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매번 마감 기한을 넘겨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니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확실성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까? 약을 먹으면 갑자기 집중력이 생겨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 오히려 ADHD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그럼 내 이 게으름과 집중력 부족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더 막막해질 것 같기도 하다. 경계성 지능이나 다른 기분 장애 같은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요즘은 검색창에 치매 초기 증상이나 조현병 치료 사례까지 찾아보면서 혼자 불안해하다가, 또 금세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불안해하면서도 정작 해결을 위한 첫 발을 떼는 건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르겠다.
일단은 조금씩 관찰해보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그냥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으면 푹 쉬어라’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게 쉬어서 해결될 문제인지, 아니면 정말 뇌의 기능적인 문제인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조용한 ADHD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본인이 가장 괴롭다는 글을 읽었는데, 그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다음 주에는 일단 회사 근처의 병원 중 대기 시간이 그나마 짧은 곳에 다시 전화를 해볼 생각이다. 물론, 그 전화를 정말 걸 수 있을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오늘도 멍하니 모니터만 보다가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 쌓여있는 업무는 내일의 나에게 미뤄두고, 일단 집에 가서 잠이나 좀 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