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머리가 계속 멍하고, 마치 내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가 싶었는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다들 나이 들면서 겪는 갱년기 증상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데,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길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머리 두통이나 멍한 증상을 검색하다 보면 무도병 같은 무서운 단어들만 쏟아져 나와서 결국 마음을 먹고 병원을 찾아보게 되었다.
대연동 골목길에서 보낸 오전 시간
사실 집 근처에 있는 곳은 왠지 모르게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칠까 봐 괜히 걱정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사람들이 수군댈 것 같은 지레짐작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가본 적도 없는 대연동까지 버스를 타고 나갔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꽤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하필 그날따라 날씨가 왜 그렇게 습했는지 모르겠다.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텔레비전 소리는 작게 들리고 사람들은 다들 고개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 적막해서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뇌파 검사와 묘하게 불투명한 결과
상담실에 들어갔더니 선생님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갑자기 뇌파 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했다. 비용이 대략 10만 원 안팎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머리에 젤 같은 걸 바르고 기계를 연결해서 20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라고 하는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기계 소리만 윙윙거리는 게 참 어색했다.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들었는데, 선생님은 ‘스트레스 수치가 높다’는 말과 함께 몇 가지 약을 처방해주셨다. 뇌파 그래프를 보여주는데 사실 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냥 ‘아,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는데, 정말 이 약을 먹으면 멍한 게 나아질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약 봉투를 들고 나오는 길의 찜찜함
병원 문을 나서는데 바로 옆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었다. 조제비까지 합치니 금액이 적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약을 한 알 꺼내 보니 이걸 내가 왜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걸 먹는다고 내 마음속의 답답함이 해결될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따라다녔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막상 친구를 만나면 그냥 ‘요즘 피곤해서 그래’라고 둘러대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드라마틱하게 뭐가 바뀔 것 같은데, 현실은 그냥 약 하나 늘어나고 병원비 챙기고 끝인 것 같아 씁쓸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지금 3주째 약을 먹고 있는데, 솔직히 크게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 멍한 증상은 여전한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약 기운 때문인지 머리가 더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선생님한테 가서 ‘이거 효과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하다. 예전에 어디서 봤던 AI 챗봇 상담 기사 같은 게 떠올랐다. 차라리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AI한테 다 털어놓는 게 나을까 싶다가도, 결국 사람이 하는 말은 그냥 껍데기뿐인 것 같아 허무하다. 다음 예약일이 잡혀 있는데, 가서 또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될까 봐 벌써부터 가기가 귀찮아진다. 낫고 싶으면서도 병원에 가는 건 왜 이렇게 숙제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약이나 마저 먹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