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전화를 걸기까지 걸린 시간
사실 몇 달 전부터 계속 머리가 지끈거리는 편두통 때문에 고생을 했다. 처음에는 그냥 회사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이게 단순히 일 때문이라기엔 좀 이상할 정도로 잠을 못 자는 밤이 길어졌다. 논현동정신과를 검색해보면 광고가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디를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전화해보면 대기가 최소 한 달이라더라. 강남역정신과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하다는 곳들은 하나같이 초진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내 상황을 설명하기도 전에 벌써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집이랑 적당히 가깝고 리뷰가 너무 화려하지 않은 곳을 골라 겨우 진료 예약을 잡았다. 3주를 기다렸다. 그동안 나는 매일 밤 자율신경 검사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며 내가 대체 왜 이런 상태인지 나름대로 진단해보곤 했다.
대기실에서 마주한 묘한 풍경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느꼈던 건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거였다. 대기실에는 나처럼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상담비는 초진이라 대략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 예상하고 갔다. 사실 비용보다는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서 앉아만 있다가 오는 건 아닐지가 더 걱정됐다. 접수처에서 건네준 설문지는 꽤 길었다. 문항이 너무 많아서 이걸 다 읽고 체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더 아파지는 느낌이었다. 간호사님이 조용히 안내해주셨는데, 딱히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그 사무적인 태도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왠지 내가 특별한 병에 걸린 게 아니라 그냥 흔한 일상을 사는 사람 중 한 명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상담실 안에서의 짧은 대화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은 체감상 2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는 증상들을 나열했다. 잠을 못 자고, 가슴이 답답하고, 이유 없이 식은땀이 난다고. 선생님은 딱히 내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해석해주지 않으셨다. 그냥 덤덤하게 들어주셨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게 전부였다. 나는 뭔가 여기서 엄청난 해결책을 얻어갈 줄 알았는데, 막상 상담이 끝나갈 때쯤엔 ‘그냥 내가 예민한 거였나’라는 생각과 ‘아니야, 그래도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섞여서 좀 복잡했다. 처방전에는 이름 모를 약들이 적혀 있었다. 이걸 먹으면 진짜 좋아질까? 사실 잘 모르겠다. 상담 후에도 내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아니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
병원 문을 나설 때의 기분은 여전히 찜찜했다. 처방받은 약값을 계산해보니 며칠 치 약값까지 합쳐서 꽤 나왔다. 돈을 쓴 만큼 마음이 개운해지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데 옆 사람들의 일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천안신경정신과를 다니는 지인한테 물어봤을 땐 약을 먹고 나아졌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너무 성급하게 결과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약봉지를 가방에 쑤셔 넣고 걷다 보니 편의점이 보였다. 그냥 탄산수 하나를 사서 마셨다. 목이 타는 건 여전했다. 내일은 좀 다를까, 아니면 이 상태가 한동안 더 지속될까. 그냥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조금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반복해서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