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논현역 근처의 작은 정신과 문 앞에서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골목길을 한참 걸어 올라갔다. 신논현 주변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 너무 많고 소음이 끊이질 않아서, 상담받으러 가는 길 내내 괜히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서 잠이나 좀 더 잘걸 그랬나. 사실 불면증인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밤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천장 무늬만 세고 있다가 해가 뜨는 게 반복되니까 사람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예약해둔 곳은 무슨 빌딩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서 문고리를 잡고 한참을 망설였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잠이 안 와요’ 하면 다 끝나는 건가. 가격은 초진이라 5만 원 정도 나온다고 안내받았는데, 막상 상담실에 들어가서 앉으니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건 아닌가 싶어서 자꾸만 입이 안 떨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기력의 정체
의사 선생님은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상담이라는 게 드라마처럼 감동적인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사무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최근에 밥은 잘 먹나요’, ‘잠은 몇 시에 드나요’, ‘특별히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 같은 질문들. 이런 건 검색창에만 쳐도 나오는 것들인데 싶어서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데 막상 ‘딱히 이유가 없어요’라고 대답하고 나니, 내 안에서 툭 하고 뭔가가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정말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이유들이 엉켜 있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그냥 놔버린 상태에 가까웠다. 예전에 뉴스에서 기면증이나 인지행동치료 같은 단어들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지금 그런 전문적인 단어를 써가며 상태를 설명할 처지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나는 지금 좀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어쩌면 어딘가 아픈 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미묘한 기분
상담 시간은 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해서 건네받았는데, 이걸 먹으면 정말 어제처럼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없어질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신논현의 거리는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다들 자기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걷고 있었다. 나만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약 봉투를 가방에 구겨 넣고 지하철을 탔다. 인천 서구에 있는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할까 말까 하다가 관뒀다. 지금 내 불면증이랑 할머니 건강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약을 식탁 위에 올려두니, 이게 과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내일은 좀 다를까. 사실 그런 기대조차 하기 싫어서 그냥 TV만 켜놓고 앉아 있다.
계속되는 건망증과 멍한 일상들
상담 중에 의사 선생님이 건망증 이야기를 꺼냈을 때, 사실 좀 당황했다. 내가 상담을 받으러 온 건 불면증 때문이었지,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최근에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확인하러 다시 집에 올라간 적이 몇 번 있었다. 내 정신 건강이 생각보다 더 엉망인가 싶어서 기분이 묘했다. 상담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역 환승 구간을 지나는데, 내가 어디서 내려야 할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이건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결국 나를 이 병원까지 오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무기력함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조금씩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일상을 갉아먹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내일은 또 출근을 해야 하는데, 과연 이 약을 먹으면 잠이 좀 올지, 아니면 그냥 내일도 똑같이 멍한 상태로 버티게 될지 잘 모르겠다. 상담료로 쓴 돈만큼의 가치가 있었는지도 지금은 판단이 안 선다. 그냥 좀 더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가스 밸브 확인하는 꼼꼼함도 정신 건강 문제의 일부인 것 같아요.
가스 밸브 확인하러 집으로 돌아갈 때 겪는 혼란, 정말 공감되네요. 저도 가끔 그런 순간들이 닥쳐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해지거든요.
밤에 잠이 안 올 때, 검색으로도 찾기 힘든 증상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저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