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턱을 넘기까지 걸린 이상한 시간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동네 한의원을 갈까 고민했다.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잠을 못 자는 거라고 스스로를 계속 설득하고 싶었으니까. 강남구청역 근처에 한의원이 꽤 많은데, 거기 가서 침 좀 맞고 보약 한 재 지어 먹으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스트레스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뒷목이 뻣뻣한 게 며칠째 지속되니까 이게 정말 마음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과로인지 헷갈리더라. 정신건강의학과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치는 행위 자체가 나한테는 ‘나는 이제 환자야’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 화면을 몇 번이나 껐다 켰다 했는지 모른다.
신논현역 근처에서 헤맸던 날의 기억
결국 용기를 내서 예약을 잡은 곳은 신논현역 근처의 정신과였다. 회사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퇴근하고 가기에 딱히 좋은 위치는 아니었지만, 너무 가까우면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괜히 신경이 쓰였다. 초진비랑 상담 비용이 보통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갔는데, 막상 데스크에 앉아서 접수를 하려니 손이 떨렸다. 대기실에는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있었는데 다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다. 그 정적이 오히려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30분 정도 기다렸나, 이름이 불릴 때까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돌렸는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아 뱉어낸 말들
들어가서 앉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건넨 첫마디는 “요즘 어떤 게 가장 힘드세요?”였다. 너무 뻔한 질문인데 그 질문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막상 입을 떼니 엉뚱한 이야기부터 나왔다. 최근에 본 뉴스에서 세븐틴 조슈아가 청년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봤는데 그게 갑자기 떠올랐다고,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한지 모르겠다고 횡설수설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맥락 없는 이야기였는데, 선생님은 그냥 묵묵히 들어주셨다. 부천 사는 친구가 야간근무 때문에 불면증이 심해서 정신병원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내가 여기에 앉아있다는 게 참 묘했다.
치료를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일상적인 일일까
약을 처방받고 나오는데 왠지 모를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처방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타는데 비용이 꽤 나와서 잠시 멈칫했다. 대략 한 달 치 약값까지 합쳐서 7~8만 원 정도를 쓴 것 같은데, 이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앞으로 이걸 얼마나 더 먹어야 하나 싶은 막막함이 컸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오늘 밤에는 조금 덜 깨고 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감이 생기더라. 여전히 마음이 다 풀린 건 아니다. 오히려 약을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내 일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물음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천대 길병원 강승걸 교수님이 자살 유족 지원 연구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15억 규모의 연구라고 하던데, 사실 그렇게 거창한 연구보다 당장 오늘 내가 느끼는 이 답답함을 누가 좀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상담을 받고 나면 머리가 맑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집에 오니 그냥 피곤하기만 하다. 다음 주 예약도 잡았는데 과연 내가 꾸준히 다닐 수 있을까? 병원을 다니면서 스트레스 증상이 나아질지, 아니면 그저 약에 의존하는 상태가 되는 건 아닌지 여전히 불안하다. 상담 예약 한 번 잡는 게 이렇게 힘든데, 이 과정을 매번 반복해야 한다는 게 벌써 조금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세븐틴 조슈아 인터뷰 봤을 때랑 비슷한 감정이라 묘하게 공감되네요. 저도 가끔 막상 이야기해보니 아무 의미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