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광화문 근처에서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가 왜 이렇게 길었을까

처음 문을 열 때 들었던 불필요한 생각들

광화문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 센터를 예약하기까지 꼬박 삼 개월이 걸렸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동네 내과에서 약이나 좀 처방받아 먹으면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대기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다. 다들 무표정하게 휴대폰만 보는데, 나만 뭔가 잘못된 세상에 떨어진 것 같고. 예약 상담비는 1회 12만 원 정도였다.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는데, 막상 결제를 할 때는 이게 내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덤덤하게 카드를 내밀었다. 상담을 받기 전까지 나는 내가 ‘정상 범주’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웃긴 건, 막상 상담실에 들어가 앉으니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준비해 간 메모장이 있었는데, 그거 한 줄 읽기도 전에 목이 메어서 엉뚱한 날씨 이야기만 하다가 첫 회기가 끝났다. 시간은 50분인데, 체감상 10분도 안 지난 기분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나누는 익숙하지 않은 대화

두 번째 방문 때는 상담 선생님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셨다.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잠은 몇 시에 들었는지’ 같은 아주 사소한 질문들. 나는 거창한 트라우마나 인생의 굴곡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계속 현재의 내 상태에만 집중하셨다. 사실 그게 더 답답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매일같이 머리가 지끈거리고, 밥도 제대로 못 넘기는 상황인데 선생님은 자꾸만 어제 마신 물 한 잔의 양을 물으시니 말이다. 상담실 창밖으로 보이는 광화문의 번잡한 풍경이 대비되어 더 쓸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상담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의 감정을 정리해주시려 노력했지만, 나는 상담실 문을 나서면 다시 그 차가운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무거웠다. 상담비가 저렴한 편은 아니라 매번 갈 때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는 건가’ 싶은 의구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묘한 찝찝함

상담을 서너 번 이어가면서 조금씩 내가 왜 이렇게 무너졌는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긴 했다. 아주 어릴 적 기억부터 최근에 겪었던 대인관계의 문제까지. 그런데 이상하게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원인을 알고 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대로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결핍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상담실에서 나와서 근처 카페에 앉아 두 시간 동안 멍하니 창밖만 보다가 집에 오기도 했다. 무언가 크게 달라지길 바랐던 것 자체가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상담 센터를 나오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고민을 안고 바삐 걷는 것 같은데, 나만 너무 뒤처져 있는 기분은 여전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서의 고민

요즘은 AI 상담이나 비대면 앱도 많다던데, 그런 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직접 마주 보고 하는 상담도 이렇게 어려운데, 화면 속 글자로 내 마음을 다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전에 기사에서 보니 KAIST 같은 곳에서도 정신건강 통합센터를 운영한다던데, 다들 어떻게든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고 애쓰며 사는구나 싶다. 나는 상담을 시작하면서 내가 꽤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다들 어디 한 곳씩은 고장 난 채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상담실 선생님은 꾸준히 오면 나아질 거라고 하시지만, 나는 아직도 그 ‘나아짐’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넘겼다는 것에 안도하는 게 전부다.

남겨진 과제와 묘한 불확실성

상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10회기 정도를 채우고 나면 지금보다 나아질까. 가끔은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더 나를 위축되게 만들 때도 있다. 건강검진받듯 정기적으로 내 마음을 점검받는 일이 너무도 당연해져야 하는데, 아직 나는 그 과정조차 부끄럽게 느껴진다. 오늘도 상담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다음 주 예약을 잡았다. 12만 원이라는 금액이 주는 무게만큼이나 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상담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근처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산다. 읽지도 않을 책을 사고 나면, 그래도 내가 나를 위해 뭔가 노력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 것 같다. 상담실을 나선 이후의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왜인지 오늘따라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광화문 근처에서 상담실 문을 열기까지가 왜 이렇게 길었을까”에 대한 3개의 생각

  1.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단순히 문제 해결이 아니라, 스스로의 근원적인 부분을 파악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느껴졌습니다.

    응답
  2. 광화문 앞 풍경 보면서, 지금 느끼는 쓸쓸함이 상담 덕분에 옅어질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지금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에게는 오히려 대화가 더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응답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