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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정신과를 다녀온 뒤로도 나아진 게 없어서

기분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된다

한참 동안 기분이 바닥을 쳤다. 예전 같으면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잠을 좀 더 자거나 단 음식을 먹고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신촌까지 나가서 정신과 병원을 찾은 건 순전히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다’는 아주 원초적인 공포 때문이었다. 진료비는 초진이라 대략 3만 원 정도 나왔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병원 대기실이 꽉 차 있어서 놀랐다. 나 말고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문을 두드리고 있구나 싶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좀 묘했다. 상담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기계적으로 차트를 넘기며 내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횡설수설하며 요즘 느끼는 무기력함과 밤마다 찾아오는 불면증에 대해 털어놨다. 그때 기억나는 건, 선생님이 내 상태를 마치 날씨처럼 건조하게 정의하던 그 표정이다.

약을 먹기 시작한 첫 번째 주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은 하루 두 번이었다. 약봉지를 받아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는데, 내가 진짜 환자가 된 건가 싶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며칠은 그냥 멍했다. 원래는 만성피로 때문에 아침에 눈뜨기가 죽기보다 싫었는데, 약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적응이 된 건지 오후가 되어도 머리가 무겁긴 매한가지였다. 사실 기대한 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우울함이 싹 사라지고 다시 의욕이 솟구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조금 더 멍해진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약 부작용인지 입이 자꾸 말라서 물을 2리터는 마신 것 같다.

2주 간격으로 병원을 오가는 일

병원 예약은 2주 단위로 잡혔다. 이게 참 애매한 게, 한 번 다녀오고 나면 며칠은 ‘이제 좀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에 휩싸이다가도 금방 다시 원래의 무력한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병원 가는 날 아침, 눈을 뜨면 ‘오늘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든다. 딱히 나아진 것도 없는데 나아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여전히 힘들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벌써 늦은 것 같아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는다. 가는 길에 성수역 근처를 지나는데, 사람들이 활기차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멈춰있는 것 같은지 혼자 쓸쓸해지기도 했다. 상담은 여전히 10분 내외로 끝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선생님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번보다 잠은 좀 어떠세요?’ 이 질문에 매번 똑같이 답하는 것도 이제는 조금 지친다.

내가 원했던 건 해결이 아니었나

어느 날은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득 내가 뭘 바라고 여기를 다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정신분열이나 치매 초기 증상 같은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나한테 ‘너 지금 힘든 거 당연해’라고 말해주길 바랐던 걸까. 약을 먹어도 근본적인 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면 똑같은 방, 똑같은 짐들, 똑같이 쌓인 업무들이 나를 반긴다. 술을 좀 마시면 나아질까 싶어서 알콜 클리닉을 알아본 적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근본적인 도피일 뿐이라는 생각에 접었다. 운동을 해보라는 주변의 말은 정말이지 너무 흔해서 듣기 싫을 정도다. 달리기를 하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럴 에너지가 남아있으면 내가 진작에 했겠지 싶어서 울컥한다.

결론이 없는 게 지금의 내 상태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내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돕는 거라는데, 나는 들여다볼수록 더 깊은 구덩이로 빠지는 것만 같다. 벌써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뚜렷하게 나아졌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가끔은 약을 아예 안 먹던 때가 더 나았나 싶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약 덕분에 겨우 버티는 건가 싶기도 하다. 미래에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지금처럼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건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도 예약 문자가 왔다. 가기 싫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이 기묘한 루틴 속에서 나는 오늘도 하루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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