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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버튼을 누르고도 몇 번이나 창을 닫았다

예약 버튼을 누르고도 몇 번이나 창을 닫았다

사실 처음부터 병원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냥 요즘 들어 자꾸 물건을 잃어버리고, 중요한 약속 시간을 헷갈리는 일이 잦아졌을 뿐이다. 처음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다.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비슷하게 건망증이 있다고들 하니까. 그런데 그게 20만 원이 넘는 병원 초진 비용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정말 비용을 들여가며 확인할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막상 상담을 시작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함부터 앞섰다. 인터넷에 나오는 성인 ADHD 증상들을 읽다 보면 다 내 이야기 같다가도, 또 어떨 때는 그냥 내가 의지가 부족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책만 늘었다.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

잠실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몇 군데 검색해 봤다. 퇴근길에 들를 수 있는 곳 위주로 봤는데, 생각보다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어떤 곳은 초진 대기가 한 달이 넘는다고 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소아청소년 상담도 아니고 성인 상담인데 이렇게 대기가 길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강남 쪽 정신건강의학과들은 좀 나을까 싶어 기웃거려 봤지만, 가격대가 천차만별이었다. 결국 집 근처의 작은 의원을 선택했는데, 예약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정말 몇 번을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가서 별거 아니라고 하면 어떡하지?’ 혹은 ‘정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같은 시답지 않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담실에서의 10분, 그리고 허탈함

막상 방문했을 때는 예상보다 더 차분했다. 대기실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왔겠지.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께 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기억이 나지 않아 더듬거리기도 했고, 내가 생각해도 말의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한 10분 정도 상담을 했을까, 선생님은 무심한 듯 몇 가지 검사를 권했다. 비용은 상담료 포함해서 15만 원 정도 나왔다. 생각보다 더 비싸서 지갑을 열 때 손이 좀 떨렸다. 상담을 마치고 나왔는데, 뭔가 속이 시원해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상담 과정에서 내가 쏟아낸 말들이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뚜렷한 진단명보다는 일상의 연장

검사 결과를 듣기까지 2주가 걸렸다. 그동안 나는 더 예민해졌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민들을 사서 했다. 결과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ADHD 의심 증상’이라는 모호한 결과. 약을 먹어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담을 통해 내 생활 패턴을 조금씩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나. 마라톤 하는 의사 김세희 선생님의 글을 보면 뛰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데, 나는 당장 집 앞 공원 한 바퀴 뛰는 것도 숙제처럼 느껴진다. 상담 이후에도 여전히 열쇠를 어디 뒀는지 잊어버리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한다. 병원을 다녀왔다고 해서 내 삶이 어제와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허탈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남은 미묘한 불안감

지금도 나는 2주에 한 번씩 그곳을 찾는다. 상담료 5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나오면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늘 의문이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잠은 조금 더 잘 자게 된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약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내가 마음을 내려놓아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상담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끝이 모호한 걸까. 누군가는 정신과 상담이 마음의 감기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와 보니 감기보다는 좀 더 깊고 끈적한 문제들인 것 같다. 다음 주 예약도 잡아두긴 했는데, 사실 벌써부터 또 가기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막상 가면 또 50분 동안 내 이야기를 쏟아내겠지. 이 과정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니면 언제쯤 멈추게 될지 아직은 아무런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예약 버튼을 누르고도 몇 번이나 창을 닫았다”에 대한 3개의 생각

  1. 처음 병원에 가려는 마음이 생긴 이유가 단순히 피곤함 때문이 아니어서 공감했어요. 비용 때문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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